노트북/2015년

'The Reader' - 책 읽어 주는 남자

수행화 2015. 3. 10. 01:58


 

소설, 'The Reader' 다 읽고 난 느낌은 쓸쓸함이다.
우선 15세 소년에게 일찌기 찾아든 사랑의 감정은 화상자국이 되어 전 생애를 따라 다니고 있는 것에 독자인 나는 분노하고 한 없는 안타까움을 느낀다.
그렇지만 일인칭의 화자, 미카엘은 영혼의 일정 부분을 복구할 수 없는 황무지로 남겨 놓은 채,
지극한 휴머니스트로서, 책 읽어 주는 남자가 되는 것을 선택하면서, 운명과 나란히 쓸쓸한 길을 가게 된다.

"내 나이 열다섯이던 해에 나는 간염에 걸렸다.....바로 그때 그 여자가 나를 보살펴 주었다...."

15
세 소년, 미하엘이 36세의 여인을 만나면서 소설은 시작이 되고그 여인은 소년을 성에 눈 뜨게 하면서 관계를 유지하고, 뜻밖에도 소년에게 책을 읽어 달라고 부탁한다.
"책 읽어주기, 샤워, 사랑 행위, 그리고 잠시 같이 누워 있기- 그것이 우리 만남의 의식이 되었다."

 

"그녀가 위협해 오면 나는 지체 없이 무조건 항복했다. 나는 모든 책임을 스스로 떠맡았다. 내가 저지르지 않은 실수들을 시인했고, 내가 결코 품지도 않은 의도들을 고백했다.....그녀는 나의 변명과 맹세, 애원과 따스함을 그리워하는 것같았다.....한번인가 두번인가 그녀에게 긴 편지를 썼다. 하지만 그녀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가족이 없고, 지멘스에 근무하다가 스무 한 살에 군대에 들어 갔으며, 현재는 전차 차장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 이외 과거의 삶을 베일로 가려 둔 여인 한나 슈미츠,
이 당돌하고도 맹랑한 여인은 어린 소년을 연인으로 삼아 욕망을 가르치고, 책을 읽게 하고, 그것도 모자라 때때로 몹시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면서, 소년의 영혼에 상처를 입히곤 한다.

그러다 어느 날 홀연히 사라진다.
욕망과 사랑의 구분이 모호했던 시절의 열정을 소년은 사랑으로 간직하게 되고, 오히려 자기가 그녀를 배반했다는 부채 의식을 느끼며 고통에 시달린다.  


."언제부터인가 그녀에 대한 기억이 나를 따라다니는 것을 멈추었다. 그녀는 기차가 계속해서 앞으로 달리면 뒤쪽에 쳐지는 도시처럼 뒤에 남았다. 그도시는 그대로 있다. 우리의 등 뒤에서. 우리는 기차를 타고 가서 그 도시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때문에 그런 일을 하겠는가?"

 

문학과 철학에 깊이 심취한 소년은 법학도가 되었으며
나치 과거와 그에 관련한 재판에 대하여 연구하는 교수님과 세미나를 준비하면서 법정 견학을 하게 된다.
'
과거 탐사'라고 하는 역사적인 소명에 열광하면서

그러나 과거를 저 멀리 보내고, 공부에 몰입하면서 고통으로부터 회복을 꾀하고 있던 미하엘 앞에 비열한 운명은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법정에서 뜻밖에도 죄수 신분의 그녀를 만나게 된 것이다.

 

"그것은 마치 주사를 맞아 마비된 팔을 손으로 꼬집는 것과 같았다. 팔은 손에 의해 꼬집힌 사실을 모르고, 손은 팔을 꼬집은 사실을 안다. 그리고 뇌는 처음에는 두가지를 따로 따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다음 순간 죄는 두가지를 정확하게 구별한다....그렇지만 감각을 되돌려 놓지는 못한다.
....누가 나에게 주사를 놓았는가? 마취를 당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기 때문에 내가 나 자신에게 주사를 놓은 것인가마취는 법정 안에서만 작용하는 것이 아니었다...."
 

한나는 19944년 경 아우슈비츠 외곽 수용소인, 크라카우 근교의 작은 수용소에서 감시인 노릇을 했던 적이 있었던 것이다. 그 당시 죄수들을 호송하는 과정에 화재가 발생하였고, 그날 밤 한나를 비롯한 감시원들이 잠긴 문을 열어 주지 않는 등 적절히 대응하지 않아 건물 안에 갇혀 있던 죄수들은 모두 불에 타 죽은 사건이 있었고, 그에 대한 책임을 묻는 재판이었다
재판은 여러 회 거듭 열렸고, 최종 판결 이전 마지막 과정에서 당시의 보고서 작성자를 가리기 위해 15년 전의 보고서의 필적을 감정하려는 움직임이 있게 되자 한나는 자신이 작성한 것이라 거짓 자백을 하게 된다
.
이 과정에서 한나가 필사적으로 숨기며 살아 온 사실을 알게 된다
.
한나는 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한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그녀는 다른 사람에게 책을 읽어 달라고 했던 것이다
.
그런데 자기가 문맹이라는 사실이 노출 되느니 범법자로서의 삶을 한나는 선택하였고, 결국 종신형을 받게 되어 복역하게 된다.  


"
한나에 대한 나의 사랑때문에 겪은 나의 고통이 어느 면에서는 나의 세대의 운명이고, 독일의 운명이라는 사실, 그리고 그 때문에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그 운명에서 빠져 나오기 힘들고 또한 다른 사람들보다 슬쩍 넘어가기도 힘든 것이라는 사실이 어떻게 위안이 될 수 있는가?"


지난 시절 편지를 보내도 무시하고, 쪽지를 남겨도 모른다고 하는 등한나의 이상했던 행동들을 미하엘은 지금에야 이해하게 되었고, 그리고 자신이 문맹이라고 밝히면 가벼워질 수 있는 것을 거짓 자백을 하면서 죄를 혼자 뒤집어 쓰고 있는 한나를 도우지 못해 번민하면서 미하엘은 다시 깊은 고뇌에 빠진다.

영혼과 육신이 한나에게 잠식되어 피폐해진 탓인지, 그는 단란한 가정을 꾸려 딸을 두었으나 결국 이혼하게 되고, 행복의 많은 부분을 상실한 쓸쓸한 인생 앞에 놓이게 된 것이다.

한나의 인생 전체의 실패와 지연을 가엾게 여겼던 그는 그녀를 위해 다시 책을 읽기로 하여 카세트테잎에 담아 갔으며, 그녀가 형을 산지 8년째 되던 해에 카셋트테이프를 부치기 시작하여, 18년 되던 해까지 마지막 소포를 부치게 된다. 알고 있었던 좋아하는 작품에서 부터, 전체적으로 보아 시민적인 교양을 가질 수 있는 책들을 선정하여 읽어 보냈으니, 그 사이 그녀의 지적 수준을 엄청나게 끌어 올렸을 것은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 나는 단 한 번도 한나에게 편지를 쓰지 않았다. 하지만 그를 위해 책을 낭독하는 일은 계속했다. 일 년 동안 미국에 가 있을 때에도  그곳에서 카세트테이프를 보냈다. ......내가 책을 읽어 주는 것은 그녀에게 이야기하는 그리고 그녀와 내가 이야기하는 내 나름의 방식이었다
 

그가 소년 시절에 그녀에게 '오딧세이'를 읽어 주었다는 것은 어쩌면 운명을 예감하기라도 한 것인가?
갖 고통과 위험을 극복하고, 오랜 세월 끝에 마침내 살아 남아 귀향하였으나 거기 또 다른 고통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오딧세이의 운명을 재연이라도 하는 것이었나

상처 받은 영혼이 먼 길을 돌고 돌아 마침내 다시 책 읽어주는 남자가 되어진 것이 귀향하는 오딧세이의 모습과도 같지 않나 하고 나는 느꼈다. 고통이 기다리는 슬픈 귀향.

아이들이 부모를 사랑하는 순진무구한 상태의 사랑을 보낸 미하엘이 받아야하는 댓가는 실로 가슴 아프다. 
일찌기 잘못 잉태된 사랑은 사랑의 불임이라는 형벌을 미하엘에게 가했건만 미하엘은 반생을 통하여 책임을 느끼고 부채 의식에 시달린다니. 불공평하게도,

책을 읽어 준 4년 후에 한나는 글을 깨쳤다. 읽어 보낸 것과 같은 책을 구하여테이프가 너덜너덜하질 때까지 듣고 보면서 교도소 내에서 글을 익힌 것이다. 그리고 미하엘에게 편지를 보낸다. 그러나 그는 단 한 번도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편지와 카셋트테이프의 교환이 친숙하고 자연스럽고, 무엇보다 한나가 마음에 부담이 안될 정도로 가깝고도 멀리 있었고 그 상태가 지속되기를 바라면서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교도소장에게서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슈미츠 부인이 곧 사면될 것이며, 서신이라도 왕래가 있는 유일한 사람인 당신이 출소 후의 그녀의 생활에 대한 편의와 협조를 지원해 달라는 요지의 말을 듣게 되어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
과거와의 안전한 만남은 얼굴을 맞대지 않은 상황에서만 가능한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를 위해 집을 구했으며, 일자리도 알선해 두었으며, 지역사회의 여러 문화 프로그램도 알아 둔 다음 교도소장의 요청으로 처음으로 교도소를 방문한다.
마침내 하얗게 센 머리카락, 이마와 빰과 입 주위에 깊은 세로 주름이 간 얼굴을 가진 무거운 몸의 한나와 재회하고, 순간 한나에게서 노파의 냄새를 맡게 되어 놀라게 된다
.

"나는 그녀의 얼굴에서 기대감을 보았으며, 나를 알아보는 순간 그녀의 얼굴이 기쁨으로 환하게 빛나는 것을 보았고, 내가 다가가자 나의 얼글을 어루만지는 그녀의 두 눈을 보았고....."

"죽은 자들에게만 해명을 요구할 권리를 주고, 좌와 보상을 불면증과 악몽에다 국한시킨다면, 살아 있는 자들의 자리는 어디인가? 그러나 내가 여기서 염두에 둔 것은 살아 있는 자들이 아니라 바로 나였다. 나 역시 그녀에게 해명을 요구할 권리가 있지 않은가? 나는 어디에 있는 것인가?


.교도소에 다녀 온 이후 바쁜 일과 사이 사이 그녀의 출소를 위한 일들을 처리하면서 분노와 고통의 힘겨운 시간을 보냈고 교도소장과 그녀에게 내일 자동차로 데리러 가겠다고 약속한다.
약속한 내일, 그러니까 다음날 동 틀 녘에 한나는 목을 매어 죽었다.
그렇게 해서 책 읽어 주는 남자와 작별을 만든다.
고통을 잉태한 많은 것들은 사라질 때도 고통을 동반한다. 
그래서 미하엘은 자신들의 인생을 글로 남기고, 그로써 영원히 자유롭기를 원한다고 말하고 있다.
 


작가
'베른하르트 슐링크'는 판사이면서 푸랑크푸르트 대학을 거쳐 현재 베를린 훔볼트 대학 법대 교수로 재직 중이라고 하고, 베스트셀러 작가로 명성이 있다고 한다.

물론
두 남녀의 사랑과 운명이 감각적으로 그려진 것이 소설의 커다란 흐름이지만, 전쟁과 아우슈비츠 수용소와 당시의 학살에 대한 단죄 등, 시대가 낳을 수 있는 불행과 고통을 다시 생각해 보라는 멧시지를 가진 글이다. 

섬세한 표현들, 깊은 사색에서 나온 이지적인 글들, 감정의 흐름을 미세하게 그려 나가는 페이지들 등..... 천천히 읽어 유감이 없는 책이다. 그리고 두 권의 책을 함께 읽으며 우리에게도 참 훌륭한 번역자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쓸쓸한 여운을 전해 받으며 아쉬움으로 책을 덮었다.

 

The tectonic layes of our lives rest so tightly one on top of the other that we always come up against earlier events in later ones, not as matter that has been fully formed and pushed asid, but absolutely present and alive.

(우리 인생의 층위들은 서로 밀집되어 차곡차곡 쌓여 있기 때문에 우리는 나중의 것에서 늘 이전의 것을 만나게된다. 이전의 것은 이미 떨어져 나가거나 제쳐 둔 것이 아니며 늘 현재적인 것으로서 생동감있게 다가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