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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도는 자의 노래

떠도는 자의 노래 신경림 외진 별정우체국에 무엇인가를 놓고 온 것 같다. 어느 삭막한 간이역에 누군가를 버리고 온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문득 일어나 기차를 타고 가서는 눈이 펑펑 쏟아지는 좁은 골목을 서성이고 쓰레기들이 지저분하게 널린 저잣거리도 기웃댄다. 놓고 온 것을 찾겠다고. 아니 이미 이 세상에 오기 전 저 세상 끝에 무엇인가를 나는 놓고 왔는지도 모른다. 쓸쓸한 나룻가에 누군가를 버리고 왔는지도 모른다. 저 세상에 가서도 다시 이 세상에 버리고 간 것을 찾겠다고 헤메고 다닐지도 모른다.

번짐

번짐 장석남 (1965~) 번짐 목련꽃은 번져 사라지고 여름이 되고 너는 내게로 번져 어느덧 내가 되고 나는 다시 네게로 번진다 번짐 번져야 살지 꽃은 번져 열매가 되고 여름은 번져 가을이 된다. 번짐 음악은 번져 그림이 되고 삶은 번져 죽음이 된다. 죽음은 그러므로 번져서 이 삶을 다 환히 밝힌다 또 한 번 저녁은 번져 밤이 된다. 번짐 번져야 사랑이지 산기슭의 오두막 한채 번져서 봄 나비 한 마리 온다

율포의 기억

울포의 기억 문정희 (1947~) 일찍이 어머니가 나를 바다에 데려간 것은 소금기 많은 푸른 물을 보여 주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바다가 뿌리 뽑혀 밀려나간 후 꿈틀거리는 검은 뻘밭 때문이었다. 뻘밭에 위험을 무릅쓰고 퍼득거리는 것들 숨 쉬고 사는 것들의 힘을 보여 주고 싶었던 거다. 먹이를 건지기 위해서는 사람은 왜 무릎을 꺾는 것일까 깊게 허리를 굽혀야 할까 생명이 사는 곳은 왜 저토록 쓸쓸한 맨 살일까 일찍이 어머니가 나를 바다에 데려간 것은 저 無爲한 해조음을 들려주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물 위에 집을 짓는 새들과 각혈하듯 노을을 내뿜는 포구를 배경으로 성자처럼 뻘밭에 고개를 숙이고 먹이를 건지는 슬프고 경건한 손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화살과 노래

화살과 노래 HW 롱펠로_ 공중을 향해 화살 하나를 쏘아 올리니 땅에 떨어졌네 내가 모르는 곳에, 빠르게 날아 가는 화살을 내 눈이 따를 수 없었기에, 공중을 향해 노래를 부르니 땅에 떨어졌네 내가 모르는 곳에. 누가 그처럼 강하고 예리한 눈을 가져 날아가는 노래를 따를 수 있으랴. 세월이 많이 흐른 뒤 어느 떡갈나무에서 그 화살을 발견했네 부러지지 않은채로 그리고 온전한 그대로 그노래를 한 친구의 가슴속에서 다시 찾았네. - 장영희 譯 무심히 내뱉은 말이 남의 가슴에 비수가 되어 꽂히기도 하고, 또 내 말 한마디에 힘입어 넘어졌던 사람이 다시 용기를 갖고 일어나기도 한다. 그만큼 내가 지금 하는 말은 그냥 허공으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가슴에서 영원한 생명을 갖는다. 노래하는 마음, 시를 쓰는..

만약 내가

만약 내가- -에밀리 디킨슨- 만약 내가 다른 사람의 가슴앓이를 멈추게 할 수 있다면, 나 헛되이 사는 것은 아니리. 만약 내가 누군가의 아픔을 쓰다듬어 줄 수 있다면, 혹은 고통 하나를 가라앉힐 수 있다면, 혹은 기진맥진 지친 한 마리 울새를 둥지로 되돌아가게 할 수 있다면, 나 헛되이 사는 것은 아니리. 장영희 譯 네 가슴 숨은 상처 보듬을 수 있다면... 그토롤 귀한 생명받아 태어 나서 헛되이 살다 갈 것인가 누군가 나로 하여 고통 하나를 덜 수 있다면...

가여워 마세요

가여워 마세요 -에드나 빈센트 밀레이- 날 가여워 마세요, 달이 이지러진다고, 썰물이 바다로 밀려 간다고, 한 남자의 사랑이 그토록 쉬 사그라든다고,(...) 나는 알지요. 사랑이란 바람 한번 불면 떨어지고 마는 활짝 핀 꽃일 뿐임을,(...) 계산 빠른 머리는 언제나 뻔히 아는 것을 가슴은 늦게야 배운다는 것, 그것만 가여워하세요. 장영희 譯 자연의 변화무쌍함과 인생의 무상함을 짧은 사랑의 생명과 연인의 변덕스러움에 비유한 시. 그러나 계산만 잘 하고 사랑 했던 소중한 감정은 다 스러져 간다면...?

새집에 입주하며.

2004-6-17 내 한 없이 빈약한 컴퓨터 실력으로 홈페이지 구축에 도전, 딸 윤경이의 도움으로 며칠 밤을 새워 가며 내 개인 홈페이지를 오픈 했었고. 밤잠 설친다고 남편씨에게 걱정을 많이도 들어 가는 등 각고의 노력 끝에... 또방문하는 자 없는 조용한 방일지언정 나는 가끔 들어가서 이것 저것 먼지도 털고 했건만... 남의 집을 깡그리 망쳐주는 알 수 없는 손길에 의해 허물어져 가는 페이지에 애 태우는 나에게 아들이 거처를 마련해 주어 지금의 집으로 옮겼다. 2008-8-25 우선 잡기장 글을 옮기고 보니 요모조모 알아 가며 꾸며 볼 마음이 생긴다. 적응이 빠르진 않으나 실증 잘 안 내는 내 성격은 또 여기에 잔잔히 정을 붙일 것이다. 아들, 딸이 깔아 준 방석에 나는 늘 잘 놀고 있다.

노트북/2008년 2008.08.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