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222

여행을 다녀 와서

1년여 전에 예정 되었던 보로부두르 사원 여행을 다녀 와 감기를 동반한 여독으로 상당히 고생을 하고 나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 오는데 조금 시간이 걸렸다. 여행은 아무리 준비를 해도 늘 흡족하지 못하고 내 의지로만 되어지지 않는다. package 여행은 경제적이나 다수의 의지에 따라야 하니 어느 정도 불편이 따른다. 그러나 사치스런 불만이다. 비행기로 날아 적도 근방까지 다녀 오고, 더구나 가족을 불편하게 하면서 눈 호사를 하지 않았나. 발리 해변의 느긋하고 아름다운 장면이 오래 머리에 남는다. 서양인들의 우리와 다른 여행, 휴가의 모습도 부러웠다. 차분히 식사를 하거나, 책을 보며 쉬고 있거나, 낮잠을 청하거나 하는 모습 등 전혀 바쁘지가 않다. 나는 아직도 짧은 여정 중에도 더 많은 것을 보고, 더 많..

노트북/2004년 2008.08.25

인생의 또 한 페이지를 여는 손녀를 보고.

어느 날 저녁 규영이의 전화. "할머니, 오늘 유치원에 갔는데 나 혼자 선생님이랑 있었어요. 그런데 후레쉬가 터져서 너무 눈이 부셨어요. 내가 잘 하고 있으니까 엄마는 세영이랑 살그머니 나가고, 또 예쁜 낙엽잎을 주워서 세영이를 줬는데 세영이가 짝짝 찢어서 울었어요...." 장황한 설명으로 혼자 선생님과 잘 하고 있었다는 말에 흥분하고 있었더니 유치원에 EBS에서 촬영을 왔었다는 것이다. 지나 가다 얼굴이라도 나올지 모른다고 해서 그러려니 했더니 그렇게 야무지게 인터뷰까지 한 줄이야... 규영 말대로 눈이 부시게 후래쉬를 터트리며 인생의 새 장을 편 것이다. 규영 애비 처음 유치원 보낼때의 그 벅찼던 심정, 처음 도시락을 싸 보내던 날의 기쁨과 걱정. 공연히 눈물이 앞을 가려 시야가 뿌연채로 손잡고 걷던..

노트북/2004년 2008.08.24

가을, 비, 낙엽, 그 아름다운 이별.

아름다운 계절이 지금 가고 있다. 가을비 소리 없이 내리는 정경에서 시 한편 받아 든듯 고즈녁하다. 나무잎의 윤회를 떠 올려 본다. 이른 봄에는 연녹의 싹을 튀우며 천지에 잠을 깨우고 우리 가슴을 터질듯 벅차게 하더니, 용광로처럼 뜨거운 여름날, 더위를 온몸으로 받으며 그늘을 주고, 나무에 강렬한 에너지를 실어 주더니, 어느새 대기에 찬 기운이 서리면, 나무의 시계는 벌써 겨울의 기별을 알고 준비를 한다. 잘 키우고 보든고 있던 잎사귀를 버거워하며 몸을 가벼이 한다. 생에서 소임을 댜했으니, 화려하고 찬란한 옷으로 바꿔 입으며 아름다운 퇴장을 준비한다. 가을비에 실어 조용한 이별의 의식을 가진다. 참으로 치열했던 여름에의 추억을 안은채. 처연히 떨어지는 낙엽을 보며 우리는 스스로 안으로 깊어진다. 우리의..

노트북/2004년 2008.08.24

가나 쵸콜렛에의 추억

세영이는 생김새나 모습에서 사랑이 뚝뚝 묻어 있는 아이다. 얼굴 가득 사랑을 머금고 있다가는 미소와 함께 사방에 뿌리는 것같은 아이다. 지난 일요일. 아빠는 예식장 가고, 엄마는 언니랑 연극 구경 가고. 할머니. 할아버지랑 세 식구만 집에 남게 되었다. 불과 3시간 남짓이지만 우리로서는 대단한 일이었다. 우리는 세영이의 환심(?)을 사려고 빵집에 가서 가장 맛있게 생긴 빵 3종을 샀다. 가장 맛있다는 것의 개념은 치즈나 햄 마요네즈 등 평소 언니때문에 잘 못 먹는 재료가 든 것들을 말한다. '빠리바게뜨' 노천 의자에 달랑 앉아 빵을 먹으니며 그렇게 행복한 표정을 지은 다음, 건물 밖으로 새어 나온 음악에 고개까지 좌,우로 까딱이고 있으니 지나 가는 사람들이 모두들"너무 귀엽다" 며 탄성을 지르고 간다. ..

노트북/2004년 2008.08.24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

규영이가 곧 한글을 익힐 것같다. 오늘 작은 그림책을 보면서 내게 설명을 했다. '고양이'에서 '양'의 받침을 가리키며 이것을 치우면 야구의 "야'가 된단다. 또 '다람쥐'의 '람'의 받침을 가리키며 이것도 치우면 라디오의 '라'가 된단다. 그리고 '수'에서 아래쪽을 이렇게 돌리면 '소'가 된단다. 쉬운 글자는 몇개 아는데, 오늘은 아빠가 글자가 되는 원리를 일러 줬더니 당장 할머니한테 해 보여 주는 거란다. 글자 가르치는 것도 논리적으로 하는 규영 아빠... 요즈음은 웃기느라고 "고 고 고짜로 시작하는 것 먹을래 -고기-" "꺼짜로 시작하는것, 먹을래 -껌-"...하는식의 말을 한다. 오늘은 뜬금 없이 확인하는 '하'라는 말을 쓴다. 정말 고급 언어를 쓸 모양이다. 아이에 보조를 맞추려면 어른이 바쁘게..

노트북/2004년 2008.08.24

손녀 생각

지난 15일은 기억하고 싶은 날이다. 손녀가 다 자란듯, 엄마 떨어져 처음 우리집에서 잔 날이기 때문이다. 병원 놀이를 좋아하는 손녀를 위해 할아버지께서 진짜 주사기를 사다 주신게 계기이다. 주사 바늘로 푹신한 봉재인형의 엉덩이를 찌르고, 반창고를 바르고, 작은 책을 뒤적이며 처방전을 쓰고... 정말 끈질기게 반복하며 종일을 노는 것이다. 너무 열중하더니 급기야 자고 가겠다는 것이 아닌가 ? 치료 받느라 반창고가 덕지덕지 붙은 인형이랑 반창고, 가위, 붕대, 핀셋, 처방전 용지까지 든 왕진 가방을 머리 위에 늘어 놓고 잠이 든 것이다. "이 약을 한동안 먹이세요. 열이 떨어질꺼예요. 오늘은 핑크색 약만 드리겠어요. 그리고 토토로 들어 오세요. 이것 저것 말해 줄게 있어요....." 꿈 속에서도 소꼽 놀이..

노트북/2004년 2008.08.24

'나 자신을 유혹하다'의 의미

'김 점선'이라는 화가가 오늘 신문에 칼럼을 썼다. 그분의 글의 요체만 볼뿐 그분의 그림에 대해 나는 잘 모른다. 컴퓨터로 그린 그림을 본 적이 있는데 개성적인 현란한 색감이 보기 좋았다는 정도 밖에... 그림을 사랑하고, 그리기를 좋아하는 그분도 때로 산책도 하고 싶고, 작업실에 들어 가기 싫은 날이 있어, 자기를 유혹하기로 맘 먹었단다. 전날 밤 자기가 싫어 하는 색깔을 캔바스에 잔뜩 발라 놓으면, 다음날 아침, 그색깔이 싫어 색칠을 하다 보면 작업이 진행 된다고... 어느 분야에서 자기의 위치를 가진 사람은 남 다른 데가 있는 법. 대가는 아니더라도 나도 한가지 일에 몰입해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지나고 보면 허실을 알게 되는 데 너무 하고 싶은게 많은게 문제인 것이다. 이거 저것 기웃거리며 이룬..

노트북/2004년 2008.08.24

대한민국의 딸로서 살아 가기

지금 나의 얘기를 들으면 시대착오적이고 진부하다고들 얘기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내 삶의 궤적(軌跡)을 더듬어 정립된 다분히 나의 주관적 관점이기에. 딸은 자라면 결혼을 통하여 남편의 가문에 입적이 된다. 그리고는 생소한 환경에 혼자 던져지고 지금껏 살던 집은 친정이라는 이름으로 남고 자기 자리는 소멸해 버리는 것이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너무 가혹한 제도가 아닌가 ? 거기서 정면으로 외로움에 부딪치고 혼자 모든 적응 후유증을 앓아야하는 것이다. 그 후유증이 작든 크든. 그 고통이 시간 속에 녹고 녹아, 사물에 연민심을 가지는 어머니의 모습으로 탈바꿈 하기까지 참으로 긴 인내를 요구하지 않는가 ? 그래서 나는 나의 며느리를 맞으며 우리 가족은 모두 새식구가 우리의 모든 것에 즐거이 적응하게 마음으로 도..

노트북/2004년 2008.08.24

나는 현재에 충실한가?

아들이 오늘 또 해외 출장을 갔다. 주말에 집에 오면 거의 낮잠을 자고 간다. 쌓인 피로 때문에. 아들에 대해 누군가 묻기에, - 아들은 주변의 관심이 많은편이기에 더러 이런 질문을 받는다.- 우리 아들은 '늘 오늘에 충실하고, 현재를 충실히 사는 사람'이라고 말해 줬다. 그것이 소박한 나의 견해이기에. 현재 상황이 나쁘고 불만스러워도 늘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일만 열심히 하니 엄마는 항상 믿고 마음 속 깊은 응원을 보낸다. 그러다보니 꿈을 잃지 않나 내심 불안해 보기도 하지만. 미래의 걱정이 많고 꿈이 많았던 나는 그럼 현재에 충실한가? 시간을 좀 먹고 인생을 낭비한 과오가 두렵다. 간밤에 비가 뿌리더니 가을이 한 걸음 더 닥아선 것이 보인다. 옷깃을 여미면서 생각도 추스려보자. 골똘히 미래만 생각하다 ..

노트북/2004년 2008.08.24

강촌 휴게소에서

닻 올린 배처럼 생긴 외관이 좋아, 순한 강을 끼고 달리는 정경이 아름다워, 틈만 나면 내달리던 경춘가도, 강촌 휴게소. 올 무더운 어느날, 남편과 오랜만에 가 본 그곳은, 오래고 낡은 영화를, 이름 없는 시골 장터에서 보고 있는 쓸쓸함이 있었다. 나는 처량한 심정이 되어 시골 간이역처럼 썰렁한 휴게소 식당에 앉으니, 이 곳을 사랑했고 제법 부지런히 드나들던 젊었던 날들의 기억 저장고에 빤한 불이 지펴진다. 그땐 정말 젊었었지! 그리고 엄마와 함께 와서 강물을 바라보던 어떤 날의 기억에서 장면이 고정된다. 강물이 어제의 그 강물이 아니듯 많은 것이 변했다는 생각을 한다. 그때도 강물을 바라보며 강인한 모성과 지극한 자식사랑을 생각했었다는 것까지 함께...... 생각은 다시 현재로 돌아와 엄마로, 할머니로..

노트북/2004년 2008.08.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