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222

시작이 있고 끝이 있으니...다시 새해.

해가 바뀌었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또 한 해가 주어졌다. 새해 일출을 보려고 바다로, 산으로, 동쪽으로 동쪽으로 줄을 이어 가는 것도 이제 흔히 보는 새해 아침의 풍경이다. 쌓인 눈길을 헤치며 길을 나서는 자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밝고 여유롭다 어제 뜬 태양이 오늘 또 떠오르건만 우리는 어제와 분별하고 벅찬 의미를 부여한다. 그러나 시작이 있고 끝이 있는 한해 한해가 있기에 지난 시간을 잠시 도리켜 점검해 보고 좀 더 나은 삶을 꿈 꾸어 보는 것이 아니겠는가. 꿈. 내게 꿈이 있었던가? 꿈을 꾼다는 건 내게 더 없는 사치가 아니던가? 그래서 나는 시간 뒤에 숨어서 졸렬하고도 무의미하게 떠내려 가고 있었던 것같다. 그러나 새 달력을 내다 걸면서 나름의 각오도 해보고 작은 소망을 마음에 담아 보며 하루를 보..

노트북/2011년 2012.12.03

인터넷때문에 사라져 가는 것들

나인 투 파이브 비디오대여점 집중력 예의바른태도 CD 전화번호부 편지쓰기 휴가 프라이버시 사실(fact) 폴라로이드카메라와 필름 백과사전 졸업앨범 스트립쇼 미국의 시사 주간지 뉴스위크에 인터넷의 발달로 우리생활에 밀접한 것들이 사라지거나 바뀌는 것들에 대해 쓴 기사를 얼마 전에 보고 생각이 좀 많아졌다. 이메일로 업무를 처리하는 일도 가능해 졌으니 나인 투 파이브의 근무패턴이 달라지는 것이고, 세계 각국이 인터넷으로 연결이 되어 있으니 어디를 가도 업무에서 완전한 해방이 어려워 진정한 휴가도 없다는 점 공감이 간다. 25년 전 미국에서 설립되어 3000여개의 점포를 뒀던 비디오 대여 체인점 브록버스터도 지난해 파산했다고 하니 비디오 대여점도 과거의 일이 되었고, 인터넷에 성인 인증만으로 접속하여 얼마든지..

노트북/2010년 2012.12.03

법정 스님의 '서 있는 사람들'

1978년에 출판된 법정 스님의 책. 책 서문에서 “70년대에 들어서면서 우리 둘레에는 부쩍 ‘서 있는 사람들’이 많다. 출퇴근 시간의 붐비는 차 안에서만이 아니라 여러 계층에서 제 자리에 앉지 못하고 서성거리는 사람이 많다. 똑같은 자격으로 차를 타도 앉을 자리가 없어 선채로 실려 가는 사람이 많다.” 그 선량한 이웃을 생각하며 글을 썼기에 ‘서 있는 사람들’ 이라고 제목을 붙이셨다고 하신다. 1978년에 출간 된 책인지라 누렇게 변한 종이에 세로로 촘촘히 쓰인 글이다. 책장을 넘기며 나는 함부로 버려졌던 소중한 것들을 기억의 방에서 찬찬히 꺼내보는 마음이 되어 읽었다. 젊은 시절에도 스님께서는 중생의 삶에 대해, 급변하는 사회에 대해, 또 변질 되어 가는 불도량에 대해 그 특유의 맑고 잔잔한 목소리로..

노트북/2010년 2012.12.03

거울이 된 개와 거울에 비친 우리.

"뜨거운 여름 낮에는 햇볕을 받는 흙에서 삭정이가 타는 냄새가 났고 저녁의 공기는 나무들의 향기로 가득 찼지. 밤이 깊어지면 그 향기에 물비린내가 겹쳤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그믐밤에도 먼 냄새는 이 세상에 가득 찼어, 나는 가끔씩 밤새도록 그 먼 냄새 속을 쏘다녔어. 그런 밤중에, 하늘엔 별들이 총총히 박혀 있었어, 별들을 쳐다보면 무언지 와글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는데 귀 기울여도 소리는 들리지 않았어. 이 세상을 가득 메운 이 먼 냄새가 별에서 오는 것인가 싶어서 별을 향해 콧구멍을 쳐들어도 별로부터는 아무런 냄새도 오지 않았어. 그래서 또 들판을 마구 달렸는데, 아무리 달려도 별들은 가까워지지 않았어." 영혼이 깨끗하고 한 없이 섬세한 누군가가 읊고 있는 서정적 밤 풍경 같은 이 글..

노트북/2010년 2012.12.03

배움의 우주에 별을 띄우고.

우리 세영이는 얼굴도 더 없이 예쁘지만 동그랗게 튀어 나온 이마가 그렇게 예쁘다. 엄마가 읽어 주던 “마빡이”라는 제목의 책 한 권을 들고 와서는 페이지를 넘겨 가며 아주 큰 소리로 내게 읽어 주어 깜짝 놀라게 하던 아기, 글자도 모르면서 한자도 틀리지 않게 또박또박 읽어 주었으니 어찌 감동하지 않았으리! . “오늘이 너희 엄마, 아빠 결혼 기념일이야” “그럼 우리는 다시 엄마 뱃 속에 다시 들어 가야 돼?” 당연하고도 진지하게 물어 오던 그 천진한 시간을 지나고…. 예쁜 이마 내 놓으면 좋아라하는 할머니를 위해 현관문 들어 서면서, 머리띠로 머리카락을 좍 밀어 넘겨 올백을 만들면서 하는 말, “할머니 소~원”. 우리 마빡이 세영이가 학교엘 갔다. 입학식에 맞춰 옷을 한 벌 사 입혔다. 평소에는 옷 갈아..

노트북/2010년 2012.12.03

구슬이 꿰어져 보배되듯...

우리 규영이는 손재주가 남 다르고 또 손으로 뭔가 만드는 걸 늘 좋아 한다. 따문 따문 바느질하여 만든 핸폰 걸이를 선물 받은 건 까만 옛 일이고, 비즈를 꿰어 멋스헙게 만든 반지와 팔찌셋트는 자랑 삼아 몇번 착용하고 나서기도 했다. 터키블루빛으로 샛깔도 예뻐 수제 악세사리 기성품에 손색이 없다. 겨우 아기 손 면한 그 작은 손으로 깨알같은 알갱이를 집어 꿰고 또 꿰어 만들었으니 신통하지 않을 수가 없다. 종이접이로 만든 부채는 누가봐도 수준급으로 도무지 믿기지 않는 일을 하고 노는 것이다. “이건 할머니 선물이야” “고마워, 정말 너가 만들었어?” “너무 예쁘다. 꼭 가게에서 산 것 같네.....“ 야무지고 꼼꼼하게 완성한 것이 여간한 솜씨가 아니라 선물을 받을 때는 너무 놀랍고 기특하여 칭찬을 아낄 ..

노트북/2010년 2012.12.03

모로코의 낙타와 성자_ 엘리아스 카네티

나에게 있어 모로코의 기억은 멈춰버린 활동사진의 장면처럼 박제된 채로, 꿈결인 듯, 잠결인 듯 설핏한 기억들이 파편처럼 부스러져 나뒹굴고 있었다. ‘모로코와 낙타와 성자’는 딱 맞아 떨어지는 이미지의 배합이라 제목에 이끌려 읽어 본 책이다. 엘리아스카네티라는 글을 쓰는 사람 같고 여행지에서의 느낌을 이방인의 객관적 시선으로 차분하게, 그리고 군데군데 애정과 연민을 담아 아주 아름다운 문체로 잘 써 내려 간다. ......낙타 시장에서 흥정 되어지는 낙타, 죽음을 예견하고 발작하는 모습. 아무 언어를 몰라도 알라는 들린다는 시장 거리. 글 써 주는 사람. 그 사람 앞에 온 가족이 진지한 얼굴이 되어 앉아 있는 장면. 여행자에게 무조건 취직을 부탁하고 추천서를 써 달라고 매일 막무가내로 조르는 청년. 세헤라..

노트북/2010년 2012.12.03

" 영화로 만나는 클래식 음악 "

내 젊었던 날. 나는 내 몸이 힘들지 않으면 나 자신에게 불성실한 것으로 생각했고, 그리고 내 인생은 금방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져 버릴 것 같은 강박 비슷한 관념에 시달리며 나를 달달 볶았으며 늘 뭔가 불편하고 속 상하고, 그래서 힘든 시간을 살았었다. 그래서 뭔가를 늘 생각하고 또 꼬물거리느라 잠을 줄이려 했고 건강은 썩 나빴다. 그렇다고 해서 현실을 걷어 차 버릴 당돌한 의지도 없으면서 말이다. 그것이 얼마나 감정에 입혀진 사치였으며 도무지 현실감이 없는 한가로운 신선놀음이었나를 아는 데는 많은 세월이 필요하지 않았다. 어쨌거나 나는 그 시절 클래식 음악을 알아보겠다고 -거의 공부 수준으로- 책을 사서 읽었으며, 지직거리는 라디오를 인내심을 갖고 들었으며, L.P 판을 사서 모으면서 Beethoven..

노트북/2009년 2012.12.03

김 병종의 라틴 기행

“카리브해의 흑진주 쿠바, 하고도 하바나. 치명적 중독성을 가진 도시. 불온한 여인처럼 마초 이미지의 사내들을 향해 손짓 하는 곳, 살사 리듬과 혁명의 구호가 타악기와 랩처럼 공존하는 땅. 해풍에 삭아 버린 페인트조차 표현주의 회화의 화폭으로 전이되는 곳. 하루에 열 두 번 바뀌는 카리브의 물빛. 해 저무는 기나긴 방파제 말라콘. 웃통을 벗은 사내 아이들이 마른 등을 보이며 푸른 파도 속으로 몸을 날리는 대양의 끝. 원색 판넬 집과 나부끼는 색색의 남루한 빨래에서조차 치유할 수 없는 낙천성을 내뿜는 곳. 독한 럼과 시가 냄새와 체 게바라의 흑백 사진과 영혼을 움켜쥐는 반도네온 소리가 뒤엉긴 몽환의 도시....그리고 무엇보다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 붓 자국이 강렬한 화첩 한 폭을 넘기면 싯귀 같은 ..

노트북/2009년 2012.1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