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222

묵은 일상 속으로.....

겨울을 딸네 동네에 두고 나는 봄에 묻어 집으로 가노라는 가벼운 기분으로 힘든 비행기에 실려 온지 일주일이 되어 가건만... 봄에 곁눈 한번 주지 못하고 일주일이 지났다. 자고나면 여기가 어딘가 싶고, 또 아기 울음 소리가 이명처럼 귓전에 와 있다. 무슨 희끄무레하고 어정쩡한 짓인지 모르겠다. 지구 반바퀴로 멀어져 있는데 나는 두고 온 딸과 그딸의 딸, 아들을 마음에 걸고 있으니. 순둥이 아기가 어쩐 일로 밤새 잠 못 이루고 울어 에미도 따라 울었다는 소식, 급기야 구토에 위장까지 탈을 내고서는 밥을 제대로 못 넘기겠다면서 며칠 사이 쏙 빠져 버린 딸의 얼굴....맘 아픈 사연들. 내가 힘듦이 차라리 낫다는 게 엄살이 아니다. 다음 날은 밤새 두 아기가 잘 자고, 더구나 작은 아기는 자기가 신생아임을 잊..

노트북/2009년 2012.12.03

양보심 정립의 시기

집 뒤에 비탈져 둘러 선 한 폭의 겨울 숲, 거기 나뭇가지 사이를 노을은 붉은 배경이 되어주며 하루가 저물어 감을 알린다. 세월의 가고 옴이 나와 무관한 일이기라도 하듯. 아이들 바라 보는 일에 몰입하고 있는 나를 본다. 나날이 자라고 예뻐지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시간이 흐르고 있음을 안다. 자고 나면 달라지는 아기 얼굴, 점점 개구쟁이 얼굴이 더해지는 영훈이 얼굴에서. 딸 아이의 첫째 영훈이는 동생을 보면서 자기 세계에 많은 변화가 생겼고 이런 저런 마음 쓸 일이 많아졌다. 일사불란하게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 가던 세상이 홀연히 나타난 경쟁자, 동생으로 하여 조금다르게 돌아가니까 말이다. 자기로서는 엄청난 충격일테고 또 이해할 수 없는 현실일 것이다. 그러기에 그귀엽게도 둥근 얼굴이 굳어지는 일이 부쩍..

노트북/2009년 2012.12.03

무거운 나의 이름 '할머니'

꼭 2년만에 딸이 둘째를 출산했다. 출산일이 가까웠는데도 아기 체중이 적은 편이라는 말에 은근히 마음 고생을 했는데 조그맣고 어여쁜 딸아이를 낳았다. 출산을 지켜 보는 것은 내가 아이를 낳느니보다 더 힘든다는걸 나는 경험으로 안다. 더구나 모든 시스템이 우리에게 생소한 이곳 미국에서의 출산이란 어려움이 몇배로 크다. 나는 또 졸지에 분만실에 들게 되었고 심장 떨리는 소리를 들어 가며 함께 아기를 맞이했다. 사진 몇장 찍어 준 것뿐 한 일도 없으면서 한 없이 힘이 드는 건 뭔지 모르겠다. 아기의 첫 울음. 힘겨운듯 아르릉거리며 내뱉는 울음 소리에 나는 눈물지었다. 만남에 대한 벅찬 반가움은 물론 엄마의 고통을가르며 나오느라 저 또한 힘들었을 아기에 대한 애틋함이 더 했다. 엄마의 힘을 줄여주기라고 하듯 몸..

노트북/2009년 2012.12.03

내 공책. 다음 페이지

우여곡절 끝에 다시 옛집에 들어 왔다. 문패도 바꾸고 허술한 곳을 손 보니 옛 정이 새롭다, 내 마음의 작은 공책이 되어 줄 이공간을 노트북으로 이름 지었으니... 다만 새 노트에 얹어진 예전의 글은 쓴 날짜가 2009년 2월 8일로 일괄적으로 나타나게 되어 잠시 착각하게 하나 이나마 감지덕지할 뿐. 헌 살림을 뒤져 노트를 다시 마련해 준 딸에게 또 감사하고. 애 타는 나를 위해 새집을 마련해 준 아들은 우리의 영원한 컴닥터!!!

노트북/2009년 2012.12.03

"패티 김의 고별 공연"이 내게 준 의미.

내 생애 처음 본 ‘패티 김 콘서트’가 곧 그녀의 고별 공연이어서 내 설렘과 아쉬움은 교차할 수밖에 없었다. 성남 아트센터의 돌 계단에 앉아 밝음이 서서이 잦아드는 자리에 깔려가는 어스름을 지켜 보며 사소한 낭만을 생각했다. 순간 야외등이 깜빡 켜져 오가는 사람들을 휘뿜한 배경으로 처리 하면서, 장면은 연극무대처럼 공연을 기다리는 이 시간 또한 내게 멋진 선물이어서, 기다리는 시간이 더 길어도 좋겠구나 하는 사치한 망상도 피워 보았다. 참으로 설레인다는 신선한 감정을 느껴본 것이 얼마만의 일이었던가 !아들이 내게 준 콘서트 티켓에는 신선함이 옵션으로 포함된 것이었었네. 나는 패티 김의 노래, 깊은 울림이 있는 그녀의 목소리를 늘 좋아해 왔다. 패티 김은 1958년에 데뷔를 했다고 했으나, 내가 그녀를 알..

노트북/2012년 2012.10.05

재치있고 사려 깊은 부모

"Brilliant and thoughtful parents" 미국의 소셜미디어 ‘레딧(Reddit)'에 올라 온 글을 소개하는 신문기사를 읽으며 받은 잔잔한 감동, 그 따스함이 식을까봐 지면에 남겨두고 싶어졌다. 생후 14주 된 쌍둥이 형제를 데리고 처음 비행기를 탄 젊은 부부는 쪽지를 붙인 과자 봉지를 기내의 승객들에게 돌렸다고 한다. 사연인즉, 아기들을 데리고 처음 비행기를 타게되는 지라 아기들이 비행 중 혹시 다른 승객들께 불편을 끼칠까봐 미리 양해를 구하는 내용으로서, 과자 봉지에 사연을 붙여 일일이 돌린 것인데 이를 인상깊게 본 어느 승객이 올린 글을 신문에 소개한 글이었다. 봉지에 붙은 글은 부모가 아닌 쌍둥이 아기들이 일인칭이 되어 승객에게 드리는 인사말로서 너무 재치 있고 귀여워 보였다...

노트북/2012년 2012.09.25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 김 영하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 김 영하 씨가 보내는 시칠리아에서 온 편지. 지중해에서 가장 큰 섬으로 아름다운 휴양지, 영화 대부의 무대로 등장했던 곳, 삼면이 각각 아프리카와 스페인과 이태리를 마주 보고 있다는 것 정도의 지리적인 상식밖에 없는 나, 태풍이 올라 온다는 뉴스는 접고 따스한 바람이 있을 것같은 책 속으로의 여행을 떠나 본다. 몇 년 전 어느 날 일간지에 김 영하 작가가 교수직을 버리고 해외에 가서 지낸다는 기사를 접한 기억이 있었는데, 이후 시칠리아 여행을 하여 이처럼 멋진 책을 세상에 내보냈던 것 같다. .모든 것을 이루었고 가졌으며, 남들이 부러워 마지 않는 잘 조율된 시계처럼 정확하고 여유 있게 돌아 가는 일상이라지만 영혼의 1밀리미터도 고양시키지 않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마치면 ..

노트북/2012년 2012.09.24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지금은 조금 열기가 식었지만 이 어령 선생님의 글이라면 무조건 찾아서 읽던 시절이 있었다. 가장 먼저 접한 책, “흙 속에 저 바람 속에”를 시작으로 "바람이 불어 오는 곳, 이것이 서양이다"를 거쳐 "축소지향의 일본인"... 나는 소박한 애독자로서 맹목적으로 읽고 있었고, 그것으로 나의 지적 허영심을 가득 채웠노라고 혼자 배불러 하기도 했었다. 나의 고3 시절, 몹시 열정적이시고 신선한 수업을 하시던 국어 선생님이 계셨다. 팍팍한 수업 중에도 늘 책을 얘기하셨으며, 교과서 밖의 세상에 대한 많은 정보를 전하려고 고심하시던 진취적이신 분이셨다. “시선을 멀리 두라” “전교 몇 등, 서울대 입학…뭐 이런 것보다 더 먼 미래를 보라!, 책을 읽어 넓은 세상과 마주 보라……” 그리고 어느 날 당시 출판된 이 ..

노트북/2012년 2012.09.10

사진 속 세상 읽기.

여름은 내게 언제나 독서의 계절이었다. 모두들 떠나는 휴가를 떠나지 않음으로, 딱히 필요한 일이 아니면 외출을 자제하는 편이이기에, 노는 입에 염불하듯 책장 넘기는 것이 좋다. 나이 들어 시간이 많을 때 읽어 보겠노라고 꽂아 둔 책도 많건만 나는 자주 도서관에 가서 이런저런 책을 빌려다 본다. 서가 사이를 어슬렁거리며 책 제목을 읽어 보기도 하고 –정말 기발한 제목들도 많다 – 이 책 저 책을 뽑아서 훑어 보다가 두어권 씩 빌려 오곤 한다. 그러다 내 시야에 들어 온 제목. “지구에서 단 하나뿐인 하루” 무료해지려는 나에게 뭔가 말해 줄 것 같은 제목에 이끌리고, 사진을 담은 페이지가 멋지기에 근사한 사진 구경이나 하며 눈도 쉬어 볼 겸 빌려 왔다. “리지앙에서 라다크까지” 라는 부제에 맞춰 베이징을 시..

노트북/2012년 2012.09.07

'인연' 최인호 에세이.

‘내 영혼에게 가만히 가자고 속삭이는 순간’ 첫 페이지를 펼쳐 눈에 들어 온 말이다. 소년같은 웃음으로 가족 이야기를 즐겨 쓰던 작가의 글이 비장하게 들려 조금 슬퍼진다. “점잖은 사람들은 점잖게 숨지며 그들의 영혼에게 그만 가자고 속삭인다. 임종을 지켜보고 있던 슬픈 어린 벗들이 숨이 졌다 아니다 말을 하고 있을 때 그처럼 우리도 조용히 사라지세나. 눈물의 홍수나 한숨의 폭포도 없이 사람들에게 사랑을 알린다는 것은 이별의 기쁨을 모독하는 것이 된다.” 영국 시인 '존 던'의 시를 인용하면서 시인은 스스로의 영혼에게 죽음은 이별이 아니라 타이르고 있다. 이제 그만 가만히 떠나자고 영혼에게 속삭이고 있다니.....적막이란 가슴에 새소리가 쌓이는 것이라 말하는 작가의 고독이 바로 읽혀지니 슬프다. 작가가 투..

노트북/2012년 2012.08.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