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정 채봉 시인의 수필집 한권을 읽었다. "풀잎은 왜 나에게는 꽃을 얹어 주지 않았냐고 불평하지 않았다. 풀잎은 왜 나는 지천에 널려 있는 평범한 존재냐고 투정하지 않았다. 해가 뜨면 사라져 버리기는 하였지만 이슬방울 목걸이에 감사하였다. 때로는 길 잃은 어린 풀무치의 여인숙이 되어 주는 것에 만족 하였다. ..... 어느 날 산새가 날아와서 검불을 물어 갔다. 산새는 물어 간 검불을 둥지를 짓는데 썼다. 그리고 거기에 알을 낳았다. 산바람이 흐르면서 검불의 향기를 실어 갔다. 무지개에까지.“ 풀잎의 겸손하고 선량한 향기는 무지개에게로, 또 내게로... 전율과도 같은 가벼운 현깃증이 실려 오더니 머리 위로 서늘한 비가 내린다. 풀잎은 내게 낮은 목소리로 작은 성찰의 시간을 구하라고 권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