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222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라"

오랜만에 정 채봉 시인의 수필집 한권을 읽었다. "풀잎은 왜 나에게는 꽃을 얹어 주지 않았냐고 불평하지 않았다. 풀잎은 왜 나는 지천에 널려 있는 평범한 존재냐고 투정하지 않았다. 해가 뜨면 사라져 버리기는 하였지만 이슬방울 목걸이에 감사하였다. 때로는 길 잃은 어린 풀무치의 여인숙이 되어 주는 것에 만족 하였다. ..... 어느 날 산새가 날아와서 검불을 물어 갔다. 산새는 물어 간 검불을 둥지를 짓는데 썼다. 그리고 거기에 알을 낳았다. 산바람이 흐르면서 검불의 향기를 실어 갔다. 무지개에까지.“ 풀잎의 겸손하고 선량한 향기는 무지개에게로, 또 내게로... 전율과도 같은 가벼운 현깃증이 실려 오더니 머리 위로 서늘한 비가 내린다. 풀잎은 내게 낮은 목소리로 작은 성찰의 시간을 구하라고 권유하고 있다...

노트북/2012년 2012.07.28

소설 '남한산성', 웃으면서 곡하는 슬픔

남한산성을 나는 좋아한다. 불현듯 나서기 맞춤한 거리에다 구불구불 산허리 몇 구비만 휘돌아 들면 산은 우리에게 가볍게 품울 내어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숲 사이로 잘게 부서지며 떨어지는 빛을 달빛처럼 조금씩 밟으며 걷다 보면 마음의 짐을 잠시 부려 놓는 나를 보게 되기에 더욱 좋다. 그리고 산 모롱이를 따라 그어진 성벽의 부드러운 곡선을 늘 경이롭게 바라보곤 한다. 우리 산하의 아름다움이 아담하고도 부족함이 없이 한데 어우러져 있는 자태라 여겨져 사계절 남한산성을 좋아한다. 그런데 늘 읽고 싶었던 김 훈 작가의 소설 ‘남한산성’을 읽으면서 나는 이곳이 우리 조국의 아픈 역사, 그 한 페이지가 잦아 든 곳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되었다. 1636년 12월 청태종이 10만 군사를 몰고 쳐내려 왔으나 ..

노트북/2012년 2012.07.12

헤르만 헤세의 인도 여행

헤세는 1911년 9월 초 신비의 세계에 대한 동경을 안고 인도 여행에 나섰다. 유럽의 향락적 현실에의 도피를 위해, 전생의 고향에 대한 예감에 이끌려, 소박하고 순진무구한 인간을 만나기 위해 그리움을 안고 동방으로 떠난다고 외치면서. 외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선교 활동을 하시던 곳이며, 어머니가 자란 곳이어서 어느 정도 동양적 분위기에 젖어 살았기에 인도는 그에게 향수를 가지게 하기에 충분한 인연의 땅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그는 실론과 니코바르 반도, 싱가포르와 팔렘방, 수마트라와 캔디, 콜롬보와 말레이 군도 등을 거쳐가는 것으로 여행을 끝마치게 된다. 인도는 다만 동양의 상징으로 붙여진 테마이다. 그러나 그가 동양에서 본 것은 낯선 움막집, 울창한 원시림, 강물과 동물의 울부짖음, 형형색색의 나비, 개미..

노트북/2012년 2012.02.13

그 섬에 내가 있었네 – 사진이 주는 감동

제주에 가서 김영갑 갤러리 방문을 놓쳐버린 것이 못내 아쉬워 김영갑 포토 에세이 비슷한 책을 집어 보게 되었다. “그 섬에 그가 있었네” 그가 생을 마감하기 한해 전, 2004년에 출간한 책이다. 철저한 고독 속에서, 극단적인 가난에 자신을 몰아 넣어가며 고집스럽게 애착하던 제주의 풍광을 두고, 48세의 짧은 생을 살다 간 예술인. . 책에 실린 사진을 바라보는 나를 포함하여 그의 작품을 보는 사람은 누구나 제주의 아름다운 사계, 아니 지상의 신비를 보게 될 것이다. “외로움과 평화의 이야기” 자신의 사진에 붙이고 싶은 주제라고 생각된다. 나의 짧은 안목으로 보아도 그의 사진은 한 없이 부드럽고 평화로우며 풀 잎 하나, 바람 한 점, 물결 한 자락에도 숨결이 담겨 있음을 보게 된다 . 생명에 대한 어떤 ..

노트북/2012년 2012.02.03

'스티브 잡스' 의 전기를 읽고 나서

스티브 잡스. 숱한 일화를 남기고 생을 마감하면서 그는 전설이 되어 버렸다. 지금 시중에는 그의 기이한 캐릭터를 소개하거나 또 그의 천재성을 부각시키는 많은 말과 글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에게 쏠림 현상은 그가 떠나면서 절정에 달한 것 같고, 전세계가 하나 되어 그의 죽음을 아쉬워 했다. 전기를 읽으며 나는 우선 그들이 살아 가는 자유롭고 창의적인 세상이 좋았고, 특히 책상 앞을 떠나 머리가 시키는 일을 찾아서 실현해 보는 어린 잡스의 모습이 신선하게 느껴졌다는 점이다. 자동차 수리하는 아빠를 보고 놀면서 전자공학의 기초를 알게 되었고, 주말마다 부품을 구하러 다니는 아빠를 보며 제품 생산의 과정을 익혔으며, 아버지의 흥정하는 모습을 보며 비즈니스 감각을 다진게 아닐까 싶다. “다르게 생각하라”며 ..

노트북/2012년 2012.01.31

'혼불'을 다 읽은 후

‘삼복 더위는 장편 소설과 함께’ 더위에는 책 읽는 것만한 게 없어, 읽겠다고 벼르고 벼르던 장편 소설 ‘혼불’을 도서관에서 빌렸다. 쉬엄쉬엄 읽으려고 게으른 자세로 엎드려 첫장을 훑어 보던 나는 거짓말처럼 벌떡 일어나 앉아 공손한 자세로 꼼꼼히 읽기 시작했다. 너무나 공이 들어 간 아름다운 글귀를 마주하니 저절로 예를 갖추게 된 것이었던가 한다. 그래서 총 10권을 일주일 만에 소나기 퍼붓듯이 다 읽었는데… 마지막 10권에 접어들며 느끼던 불안은 차가운 사실이 되었으니 실로 애통하고 안타까운 마음에 울적한 심사가 오래 갔다. 작가 최명희는 작픔을 끝맺지 못하고 생애를 마친 것이다. 원고지 앞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장엄하게 전사한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 아주 무리한 상상은 아닐 것이었다. 종가의 영광을 ..

노트북/2011년 2011.08.31

밤은 다시 내게 찾아 와.

유난히 길었던 장맛비가 아직도 미련을 떨구지 못한 걸까? 아니면 우리 나라도 아열대 기후로 돌아 서는 것일까? 한 줄기 맞으면 아플 것같은 세찬 비는 쏴~ 쏴 댓숲에 부는 바람 소리를 내며 쏟아지고 있다.지난 달 (6.24) 딸이랑 외손주들을 보내고, 내게 이렇게 다시 밤이 찾아 와 빗소리에 귀를 열어 두고 앉아 있게 한다. 아이들 장단에 함께 노닐다가 봄은 지는 줄 모르던 새 지고마는 꽃잎처럼 사라져 버렸다.내 눈길 한번 받지 못한 채. 이 비가 그치면 여름은 그 뜨거운 속내를 드러내고 대지에 김을 마구 올리며 한껏 쪄 오를 것이다. 어디 더웁지 않은 여름이 있을까마는, 외신 보도에 미 중서부와 유럽의 혹서에 생명을 잃은 사람까지 속출했다고 하니, 집으로 돌아 간 딸에게는 막중한 일상이 기다리고 있었을..

노트북/2011년 2011.07.27

영화 'Letters to Juliet'을 보고.

영화 한편으로 모처럼 눈 호사를 했다. 쥴리엣의 생가가 있다는 도시 ‘베로나’. 어쩌면 고즈넉하고 아름다운 이 도시가 영화의 주인공인지 모르겠다. 잘게 부서지는 부드러운 햇살 아래 보이는 도시의 붉은 지붕, 햇빛과 시간에 풍화 되어 안으로 깊어진 그 그윽한 빛깔은 우선 깊은 울림으로 가슴을 뛰게 한다. 그런데 사랑의 도시라는 이름에 걸맞게도 특이한 봉사 활동이 있단다. 사랑의 사연을 써서 ‘줄리엣의 발코니’에 붙여 두면 쥴리엣의 비서라고 불리는 봉사원들이 그 편지를 모두 수거해서 읽은 후 그에 적절한 답장을 보내준다는 아주 낭만적인 봉사 활동이 있었다. 실제로 베로나에서 행해지고 있는 일이라면 ‘베로나‘는 진정 사랑이 넘치는 멋진 도시다. 베로나를 여행하던 작가 지망생 소피는 ‘쥴레엣의 발코니’에서 우연..

노트북/2010년 2010.12.03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타나토노스-영적 세계로의 여행>

그늘을 찾게 되고, 방바닥의 찬 느낌이 좋아질 무렵이면 나는 책 읽기가 즐거워진다. 방바닥에 배를 깔고 엎드렸다 누웠다 엎치락뒤치락 뒹굴어 가며 긴 소설을 읽으면 여름이라는 계절이 마음에 들기까지 한다. 그러다가 희뿌옇게 새는 새벽을 맞는 것도 좋고, 비 오는 날이면 빗소리를 배경 음악 삼으니 그것도 좋아한다. 아들이 읽어보라고 한참 전에 가져다 둔 책인데 차일피일 시작을 미루다가 더위가 문지방을 넘나 드니 비로소 읽기 시작한 책, ‘타나토노스’. 프랑스의 젊은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장편이다. ‘1492년 아메리카 대륙에 첫발을 내디딤 1969 달에 첫발을 내디딤. 2062년 사자들의 대륙에 첫발을 내디딤. 2068 영계에 첫 상품 광고 등장.' 타나토노스란 그리스어 타나토스(Thanatos:죽음)..

노트북/2010년 2010.09.01

이한권의 책, '무소유'

법정 스님의 입적과 함께 범람하던, 스님을 칭송하던 그많은 말들은 시간 속으로 급격히 사라져 갔다. 전 생애를 통하여 보여 주신 가지런한 삶. 그 삶 자체로도 말 없는 가르침이다. “수의도 만들지 말라. 관도 만들지 말라. 사리를 수습하지 말라. 내 이름으로 나왔던 모든 책은 절판해라. 나의 것이라고 남은 것이 있다면 ‘맑고 향기로운’ 재단에 줄 것이며, 내 머리맡의 책들은 아침마다 나에게 “스님, 신문이요” 하며 갖다 주던 소년을 찾아 주면 좋겠다…” 스님의 성품이 여실히 담긴 유언, 이 얼마나 간결한 삶의 마무리인가!. 그러나 막상 몸 하나 뉘이는 관조차 없이 평소 입으시던 가사를 이불 삼아 훠어이 불길 속으로 사라지시는 광경은 차마 똑바로 바라 보기 힘이 들었다. 눈만 뜨면 세상은 가혹하게 욕망을 ..

노트북/2010년 2010.0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