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221

바다의 기별

회색 겨울은 아무래도 정들지 않는다. 눈이 흣날리고 쌓이는 환상적인 풍경이 아니라면 차거운 겨울비라도 뿌려 선뜩한 겨울맛을 보여 주었으면 하는 조금 배부른 투정을 하고 싶다. 메마른 대지에 트릿한 대기를 숨 쉬는 지금은 속수무책으로 봄만을 기다리게 된다. 봄은 어디메 쯤에 기별을 보내고 있을까? 기별과 기다림을 내내 생각한 탓인지, 김 훈 에세이, "바다의 기별'이 눈에 확 들어 왔다. 몇권 읽지 않은 내 독서이력으로 김훈 작가의 명문장은 매료되기에 충분하여 나의 분류법으로 그분의 글은 믿고 보는 편에 들어있다. '바다의 기별' 첫 페이지."모든, 닿을 수 없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품을 수 없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모든, 만져지지 않는 것들과 불러지지 않는 것들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노트북/2019년 2019.02.01

'어떻게 질문할 것인가' - 책 속의 책

"제가 읽고, 잊어버리고, 다시 기억한 책들에 대한 호기심, 여러분을 그 책들로 유혹하기 위해 이 글들을 적어 보았습니다."지면을 통하여 익히 아는 뇌 과학자 김 대식 교수님이 저자라 관심도 관심이었는데, 우선 표지 디자인이 산뜻하고 모던한데다 세련된 편집에 멋이 담뿍한 페이지 구경이 의외로 좋았다. 책 앞 뒤에 저자 프로필이 없어 내가 찾은 책이 맞나 잠시 갸우뚱해지며 딱딱할 것이라는 선입견을 떨궈야했다. 1부 삶의 가치를 고민하라. 2부 더 깊은 근원으로 돌아가라. 3부 더 깊은 차원으로 들어가라. 4부 과거에서 미래를 구하라. 5부 답이 아니라 진실을 찾아라. 6부 더 큰 질문을 던져라. 는 주제로 깔끔하게 6부로 분류돼 있고, 지면의 여백도 여유로워 편한 마음으로 읽기 시작은 했다. 그런데 1부를..

노트북/2019년 2019.01.18

새해 결심, 운명의 날.

소임을 다한 지난 해 카렌다를 폐기물로 내 보내면서 내 시간 한 더미가 뭉턱 빠져 나간 걸 실감한다. 또한 빳빳한 새 카렌다에 올해의 시간이 깨끗하게 담겨 있다. 새 것이 주는 산뜻함에 이런저런 메모를 하며 공란을 채운지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2019년은 기해(己亥)년으로 황금돼지의 해라고 하며 행운을 기원하는데 돼지띠인 나는 남다른 각오가 있어야지 않나 싶은데 별 감흥이 없다. 나날의 무탈함과 소소한 성취를 바라며 또 감사하며 지낼 마음 이외 떠오르는 게 없다. 연초에 100수를 건강하게 누리고 계시는 김 형석 교수님의 일상이 TV에 방영되어 장안의 화제가 됐다하여 다시보기로 찾아 보았다. 글쓰기와 강연에 손을 놓지 않으시면서 지극히 절제된 생활을 하시는 정갈한 모습이 감명을 주는데, 건강유지를 위하..

노트북/2019년 2019.01.08

2018년은 과거 속으로

또 한 해가 2018년이라는 한 묶음의 시간 다발이 되어 과거 속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다. 제야의 타종 현장 중계도 그저 이벤트 하나 보는듯 담담하기만 하다. 무미건조한 공기가 나를 에워싸고 있는 것같은 따분한 기분을 달래고 추스려 책상 앞에 앉았다.하지만 인간은 궁극적으로 낙관하는 존재라는 생각을 곧 하게된다. 모르면 몰라도 해가 바뀌어 가는 걸 지켜보는 이 시간만큼은 누구나 경건해지고 소망을 생각하며, 미래에 대한 크고 작은 기대를 마음에 담아 보기 때문이다. 그런 진정성으로 365개의 하루를 공평하게 받아든다. 그렇게 새해를 희망적으로 시작한다. 일년 전 오늘 가졌던 나와의 소박한 약속을 점검해 보려고 올해의 내 일상을 혼자 반추해본다. 달랑 몇 조각의 그림으로 설명이 충분하리만치 단순한 것이 보인..

노트북/2018년 2018.12.31

할머니 그만 집으로 돌아 가세요- 멋진 노년 이야기.

언제부터인가 신문은 답답한 뉴스 일색이라 읽는 일이 스트레스가 돼 버렸다, 오늘 아침도 심드렁하게 아침 신문을 넘기는데 사진 한장이 눈에 확 들어왔다.“78세 ‘걸 크러쉬’ 할머니, 펠로시, 트럼프와 설전 후 인기 치솟아…..” 빨간 코트에 선글라스 낀 근사한 여인 사진에 따른 기사 제목이다. 미국의 여성 하원의장 펠로시가 여배우처럼 훤칠해서 놀라고, 더구나 입심 좋은 트럼프와 토론은 마치고 나오는 장면이라 하니 더욱 멋져 보였다. 당당한 태도로 토론을 압도하여 인기를 끌었다고 전하면서 아울러 오렌지색 막스마라 코트와 아르마니 선글라스에도 많은 관심이 쏠렸다고 친절하게 소개하고 있다. 어쨌거나 내 관심은 78세 나이에 이렇게 멋진 모습일 수도 있다는 데 있었고, 그녀의 자신감 넘치는 자태에 매료되어 사진..

노트북/2018년 2018.12.14

가을 낮의 단상

가을이 갑자기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매의 눈을 하고 시간의 길목을 지켜본들 그 종종걸음을 따라잡을 수가 없다. 산천을 태우려 들던 뜨거운 열기는 어디로 빠져 버린 것일까? 가로수가 가을물을 들이는 것도 하룻밤 사이로, 계절도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을 자꾸 닮아가는 것만 같다. 어제는 하늘이 너무 높아 가만히 집에 있으면 손해 보는 기분이고, 어물쩡 하는 사이 가을 하나를 또 잃을 것같아 남편과 목적 없이 그저 나서기로 했다. 집을 나서며 며칠 전 친구가 가볼만한 카페를 일러 주어 거길 가보자고 해가며 일단 내비에게 길안내를 맡겼다. 올해 들어 양평 쪽으로 나들이 간 기억이 없어 강 바라볼 생각에 미리 머릿 속이 시원해졌고, 먼 산마루에 구름이 폭죽처럼 터저 나와 길 나서길 잘했다는 생각을 다시했다. 그..

노트북/2018년 2018.10.13

'타샤튜더' - 'still water'

나는 비 오는 날을 싫어하지 않는다. 여름이 남긴 자투리 더위까지 안고 가려는 가을비는 차분하고 반가운 손님이다. 비가 내린다는 건 늘 장면의 변화를 예고하고 지금 우리는 가을 길목에 있다. 나는 특별한 약속이 없으면 비 오는 날은 외출을 잘 하지 않는다. 간단 없는 빗소리를 듣거나 빗줄기가 뿌옇게 장막을 드리우는 대기를 바라보는 걸 좋아한다. 그런데도 우중에 차를 몰고 영화를 보러 나섰다. '타샤 튜더' 몇년 전 '타샤튜더의 정원'이라는 책을 읽고, 그녀의 라이프 스타일에 깊이 매료 되었고, 얼마간 그녀의 일상을 따라잡아보고 싶은 막연한 소망을 가져 보기도 했었다. 그녀의 스토리가 영화로 제작되었다고 하니 미처 못 본채 넘어 갈까봐 마음이 초조해진 건 당연하다 해야겠다. 영화는 일본인 감독에 의해 만들..

노트북/2018년 2018.10.08

남아 있는 나날 - 가즈오 이시구로

나는 소박하게 여름나는 걸 좋아한다. 방바닥에 엎드려 쿳션이랑 방석이랑 책이랑 엎치락 뒤치락해가며 더위에 무심한 태도를 보이면 더위는 멋쩍어 슬쩍 한걸음을 물리고, 나는 그 틈을 즐기는 것도 그 중 하나이다. 신선놀음은 못되어도 이 소극적 피서법이 나에게 적절한 만족을 주어 내가 즐기는 여름나기 법이었다. 적어도 이번 여름의 기록적인 더위를 만나기 전까지는. 요모 조모 책들은 들춰 보긴 했지만 휘적이는 수준이고 그나마 더위 타령을 타고 다 흘러들 가버리고 말았다. 이제 가을 기별이 오고 조금씩 두꺼운 옷을 찾아 입으니 비로소 글이 마음에 와 닿는다. 지나버린 시간을, 붙잡지 않아 나의 인생이 되지 못한 기회들을 생각하게 하는 조금은 쓸쓸한 소설, '남아 있는 나날'을 읽었다.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 (19..

노트북/2018년 2018.09.23

휘바 핀란드, '진정한 심플라이프'

달은 기울기 위해 차오르는 것일까? 심플라이프를 외치고, 미니멀리즘을 예찬하는 글들에 어느듯 귀를 기울이고 있는 걸 보면 문명한 삶과 풍요로운 위식주를 위해 질주하느라 우리는 많이 숨이 가빠진 모양이다. 우리 마을에 TV 가 몇대 없었던 시절이 있었다. 인간이 최초로 달 착륙하는 장면을 TV로 보겠다고 우리집 마당에 사람들이 가득하던 때가 있었다. (찾아 보니 1969년). 투도어 냉장고가 최신이라며 들여 놓고 닦고 또 닦으며 행복해 했던 시절이 있었다. 우리의 소박했던 지난 삶이 진정 심플한 삶이 아니었을까? 북유럽의 생활 방식이 인구에 회자하고, 그들의 뛰어난 디자인 감각을 높이 사는 분위기가 들불처럼 번져 간다. 핀란드의 논픽션 작가, '모니카 루꼬넨' 이 쓴 '휘바 핀랜드'라는 책이 내 시계에 들..

노트북/2018년 2018.07.14

파크 애비뉴의 영장류 - 맨해튼 엄마들의 세계

'Primates of Park Avenue ' - 파크 애비뉴의 영장류' 뉴욕에 가 보지 않아도, '파크 애비뉴'라는 지명은 익히 알고 있다. 주로 뉴욕 상류층의 부유한 사람들이 거주하는 주거지인가 여겼을 뿐으로 당연히 관심은 없었다. 그런데 실로 그곳 거주민은 뉴욕 인구의 0.1% 해당되는 극소수라는 걸 알게 됐다. 작가는 그들을 최고의 서식지에 사는 영장류 중 으뜸이라 분류하면서 제목을 붙인 것 같다. 작가 '웬즈데이 마틴'은 예일대에서 문화 연구와 비교문학 박사학위를 받고, 30대 중반에 파크 애비뉴 70번가에 둥지를 틀어 맨해튼 주민이 된다, 대략 1㎢ 넓이의 맨해튼 어퍼 이스트에 거주하는 최고 부자들의 생활 방식과 행동 양식들을 관찰자적 입장으로 쓴 것으로 소설 같으나 소설 아닌 글이라 큰 관..

노트북/2018년 2018.06.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