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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생각을 섞어 버무린 김장

배추 열 포기로 올 김장을 마무리했다. 김장의 고수가 되어도 한참 되어 있을 이 나이에 열 포기 김장을 담는 사이 소파에 널부러지기를 두어번 해 가며 마쳤다. 에너지 주머니가 간당 간당하다가 툭하고 떨어져 나가는 느낌이 들었으니 힘이 들었었나보다. 마늘도 미리 까 두고 나름 쉬엄 쉬엄 준비를 해 뒀건만 배추를 절이고 수 차례 씻어 건지는 일이 만만치 않았던 것같다. 그렇지만 이런 저런 생각, 특히 김장철이면 어김 없이 따라 오는 친정 엄마를 기억해 보며 혼자 뒤적 뒤적 일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우리 어린 시절 김장하는 날은 차일만 치면 잔칫날이 될 성싶게 사람이 북적거리는 연중행사였다. 그리고 산더미처럼 쌓였던 배추는 모두 김치가 되어 가는 날이었다. 하지만 나는 김장에 동참은 커녕 주변에 얼씬도 하..

노트북/2015년 2015.12.17

가을 보내기

미처 마중도 하기 전에 이 가을이 저만치 가고 있었다. 가을은 천지를 노을빛으로 물들이며 깊어져만 가고, 우리의 아쉬움은 습관처럼 가슴을 파고 든다. 나뭇잎들은 어떻게 아디지도 아름다운 소멸의 방식을 알아 냈을까? 가을색은 무성했던 여름의 추억만큼이나 다채롭고 오묘하다. 지는 잎새가 너무 아까워 집어 들어 코에다 대어 보곤 한다. 가을 내음이 담담히 스며 있다. 나뭇잎이 머금었던 시간은 함부로 나뒹굴며 영원 속으로 사라진다. 우리의 시간들이 함께 구르는 것을 보는 일은 슬프다. 감정 지수가 마이너스를 향해 급강하 한다. 어쩌나? 더 깊은 가을에 풍덩 빠지다 보면 플러스로 반전되지 않을까? 가을 마중, 또 배웅이 필요해진다. 미룬다는 것은 늦어지기 마련인 법, 더 미룰 것 없이 우리는 가을을 배웅하고자 의..

"앵무새 죽이기" , 양심을 두드리는 글

영화 ‘앵무새 죽이기’ 를 오래 전에 보기는 했다. (1962년 영화) ‘그레고리 팩’ 주연이었다는 기억만 선명하고 나머지 일련의 장면들은 그저 잘라 둔 사진처럼 따문다문 떠오를 뿐, 아리송하기만 한데 2015년 김 욱동씨 번역으로 다시 출간된 책을 읽게된 것은 행운이라 해야겠다. 비정하고 불평등한 사회에 따뜻하게 호소하는 목소리로 들린다. 저자 ‘넬 하퍼 리(Nelle Harper Lee)는 1926년 앨라베마 주 먼로빌에서 1남 3녀 중 막내딸로 태어났으며, 그녀의 아버지는 1915년부터 먼로빌에서 변호사, 잡지 편집자, 주 의회 의원을 역임하신 분이고 허파 리 자신도 한때 법률 공부를 하였다고 한다. 1960년에 출판된 책으로 그녀의 첫 소설이고 대표작이라고 하는데, 소설이 출판되자마자 100주에 ..

노트북/2015년 2015.11.08

용기 중의 용기, '미움 받을 용기'

행복해지려면 '미움 받을 용기'도 있어야..... 일본의 심리학자 '기시미 이치로'가 '아들러'의 가르침에서 가져온 주제이다. 알프레드 아들러 (Alfred Adeler)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정신의학자이며 심리학자라고 한다. 우리에게도 귀에 익은 프로이트, 융과 달리 생소한 인물이나, 그들과 함께 심리학의 3대 거장으로 일컬어진다고 한다.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분야가 너무 많다는걸 다시 깨닫게 된다. '미움 받을 용기'. 이 책이 지금 베스트 셀러 순위 1위로, 아주 핫한 책인 건 확실한 것 같다. 도서관에서 대출은 커녕 대출 예약도 잘 걸리지 않다가 천신만고 끝에 '아들러의 심리학을 읽는 밤'이라는 책만 빌려 볼 수가 있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내친 김에 '미움 받을 용기'를 교보문고에서 주문해 보게 되..

노트북/2015년 2015.10.23

소설 '파이브 데이즈'

'더글라스 케네디' (1955~) 는 빅 픽쳐', '템테이션' 등 베스트셀러 소설을 쓴 미국 작가라고 한다. 그의 소설 '모멘트'에 이어 이번에는 '파이브 데이즈'를 읽었다. 우리는 흔히 상상이 어려운 일이나 황당한 일을 두고 소설같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소설은 지금 멀지 않은 우리 이웃에서 있을 법한 느낌이 드는 것이, 낯설지가 않다. 결혼한 지 23년 된 주인공 '로라'는 메인 주'에서 태어나서, 그 곳에서 성장하여 메인 주립대학을 마쳤으며, 종합 병원 영상 의학과에서 베테랑 기사로 일하고 있다. 집과 직장을 오가며 지극히 단조로운 일상을 살아 가는 ,우리가 생각하는 미국 보통 사람들의 모습이다. 대학생 아들과 고등학생인 딸을 둔 엄마로서 언제나 소소한 걱정들을 갖고 있고, 취향과 이해가 아주 다른..

노트북/2015년 2015.10.09

'게으름에 대한 찬양'

부지런함이 미덕이라는 말은 거의 진리처럼 우리에게 각인된 개념이라 전혀 이상할 것이 없지만 게으름을 찬양한다는 건 어쩐지 어폐가 느껴지는 것이 비단 나만의 느낌은 아닐 것이다. 버트란트 럿셀 (B. russel : 1872~ 1970)의 수필집 '게으름에 대한 찬양' 고정 관념을 살짝 비틀어 주는 제목이 좋고, 게으르고 싶은 마음에 조금 위안을 주려나 하는 생각도 들고, 그러나 아무래도 근면을 강조하기 위한 반어적 표현이지 않을까 하며 책을 구해 보았다. 버트란트 럿셀은 철학가이면서 1950년에 노벨상을 받은 문필가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그의 논지는 아주 논리적이고 카리스마를 가졌으며, 시대에 멧세지를 던져주고, 문제점을 꺼내면서, 마치 토론을 유도하는 듯한 글이어서 시공을 초월하는 강력하고 좋은 수필..

노트북/2015년 2015.10.04

스마트 폰과 연세 드신 분

지난 유월 나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정들었던 스마트 폰을 최신의 것으로 바꾸게 되었다. 내 첫 번째 스마트 폰, 아이폰 4가 벌써 5년이 되었고, 이전에도 거의 5년 간격으로 애니콜 휴대폰을 두 번씩이나 바꾸었으니 나의 폰 역사는 그렇게 일천하지는 않은 것같다. 사실 탱크만한 핸드폰을 남편이 쓰던 시절로 소급해 본다면 여느 할머니보다 조금 일찍 핸드폰을 접하고 살았다 해야 할 것이다. 아이폰 4는 세련된 외양에 손 안에 쏙 들어 퍽 사랑스러웠는데 아이폰 6 플러스는 크고 시원한 느낌은 좋으나 그 넙데데한 얼굴에 금방 정이 들지는 않고 있다. 싫증을 잘 내지 않는 내게 온 새 폰도 나와 곧 정이 드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몇 년을 또 함께 지낼 것이다. 나의 첫 스마트폰이 지난 주에 아주 내게서 떠나고 말았다...

노트북/2015년 2015.09.15

'에피소드 이삭 줍기' - 여름의 어떤 일들

거짓말처럼 더위가 물러 가고 햇살은 찬물 세수를 한 것처럼 맑으니 가을을 예감한다. 그 무성하던 수목들이 어느새 찬 기운을 감지하고, 바삐 옷 갈아 입을 채비에 들었다. 무더위는 땅으로? 하늘로? 우주로?, 어디로 홀연히 사라져 버린 것일까? 딸이 아이 둘을 데리고 여름 방학 두 달여를 무더위 속에서 지내다 갔으니 자연의 조화라지만 더위에게 조금 야속한 마음이 드는 게 사실이다. 조금 늦게 와 주던지 조금 빨리 가 주지 않고..., 매일은 감동이며 흥분이라 못 견디게 행복해 하는 그 사랑스런 모습을 바라 보매 세월을 까 먹었던지 벌써 9월이란다. 웃음 소리에, 피아노 소리까지 일시에 사라지니 집은 썰물이 쓸고 간 갯벌보다 더 먹먹하다. 팔에 시커먼 멍이 든 것도 모른 채, 온 집을 뒤집어 정리하며 기력을..

노트북/2015년 2015.09.01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 망각의 무서움에 부쳐.

“우리가 그렇게 살았다우” 눈부시게 변화한 세상을 향해, 이 태평성대로 보이는 세상을 향해, 박 완서 작가가 던지는 첫 마디 말의 예감은 무겁다. 작가의 자전적 소설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는 이렇게 의심의 과제를 던지며 시작한다. 이 자전적 소설의 전편 격인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가 작가의 유년기를 거치는 20년 동안의 성장기를 그린 것이었다면 이 책은 전쟁이 발발된 해로부터 3년에 걸친 기록이다. 이 3년여의 기막힌 격동의 시간은 성장기의 20년 세월과 맞먹을 두께의 고통이요 변화였다는 것의 상징이 아닐까 싶다. "마지막 피난민이 드문드문 맹수에 놀란 토끼처럼 화들작 뛰어 내리는 길을 거슬러 우리는 숨 가쁘게 새로운 피난처에 도착했다". ..

노트북/2015년 2015.05.24

4월에 - 보림사

목련의 생애는 짧다. 그리고 생을 마감하는 일은 처절하고 고통스럽다는 걸 보여 주려 한다. 그러나 그 짧은 생은 고고하고 찬란하다. 생애 최고의 순간에 있는 목련을 보림사 경내에서 보았다 실낱같은 비가 이리 저리 흩어지던 오후, '보림사' 도량에서 만난 자목련.... "백목련이 지고 난 뒤 자목련 피는 뜰에서 다시 자목련 지는 날을 생각하는 건 고통스러웠다...." 시인은 읊었는데, 지는 날을 왜 미리 앞당겨 걱정하는지 모를 일이다. 지는 목련잎을 보는 것은 애잔하다. 그러나 목련이 지는 모습까지 어여쁘기를 바라는 건 내 가당찮은 욕심이리! 지금 한 폭 그림이 되어 내 사진에 와 있음이 행복이므로. 올 봄 우리의 사찰 순례지는 전남 장흥 '보림사' 였다. 다섯 시간 가까이 버스를 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