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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프터 유' - 뒤를 돌아 보며 앞으로 나아가기

'자신감을 갖고 자기의 한계를 벗어나 봐요. 이 좁은 시골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예요.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서 멋진 인생을 꿈 꾸어 봐요.' 윌 트레이너는 이러한 충고에, 간곡한 당부와 함께 얼마간의 돈을 주인공 루이자에게 남기고 생을 마감한다. 새로운 세상을 선물하고 그 사람, 윌 트레이너가 떠나면서 '미 비포 유'는 막을 내렸다. 소설이 허구인줄 알면서도 누군가의 인생을 진심으로 걱정해 주는 인간을 만났다는 것에 눈물을 비오듯 흘리며 읽은 기억에, 그 후속작, '애프터 유'가 나왔다고 하여 바로 책을 구매했었다. '미 비포 유'에서 이성적이며, 초월적인 인간애를 보았다면, '애프터 유'에서는 스치고 부대끼며 서로 상처를 입히고 치유해 가는, 치열하고 현실적인 사랑을 보았다고 할 수 있을 것같다. 윌 ..

노트북/2016년 2016.10.05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 줄리언 반스

자고 일어나니 가을이 방 안까지 찾아 왔다. 밤을 도와 얼마나 잰 걸음으로 달려 온 것일까? 그렇게 맹렬하던 여름의 정령이 후두둑거리던 간 밤 빗줄기를 타고 황망히 가버린 모양이다. 어제와 오늘이 딴 세상이라 가을이 참 낯설기까지 하다. 공연히 가슴이 벅차고 신선한 흥분까지 온다. 100년만의 기록적인 더위는 전기료 폭탄, 쌀 소비 감소, 냉방 잘 되는 극장이나 백화점에서 시간 보내기....... 일상에 크고 작은 변화들이 있었으며, 웃지 못할 에피소드들을 남겼던 맹랑한 여름이었다. 여름이 더울수록, 피서가 간절할 수록 나는 꼼짝 하지 않는 집순이 모드의 피서에 들어 가곤 한다. 차가운 방바닥이나, 바람이 통하는 북쪽 창문께에 자리를 잡고 앉아 책을 보는 것, 피서라기 보다 더위를 마주 보며 무시한다는 ..

노트북/2016년 2016.08.26

끈을 놓치지만 않는다면,

내려올 때 보았네 -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멋진 제목을 단 이 윤기 씨의 산문집이 도서관 서가에 꽂혀 있어 무심히 뽑아 읽다가 느낌이 유쾌해서 바로 대출해서 읽었다. 제목은 고은 시인의 시 '그 꽃'에서 가져 온 것이라고 한다. '내려 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 석 줄, 열다섯 글자가 터질 듯이 많은 말을 머금고 있다. 자기가 원하는 공부를 하고자 일찌기 학교를 떠났으며, 읽고 쓰는 삶에 몰입하였고, 부단히 정진한 결과 마침내 번역 1세대로서 대가 반열에 오르게 된 작가의 내력이 비범하고, 예사롭지 않다는 걸 새삼 알게 되었다. 자연히 이런 저런 생각이 많아진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며, 무엇을 잘 하며 어떤 인생을 살아야겠다'며 구체적인 계획서를 작성하고 그 길을 따라 살다 간 ..

노트북/2016년 2016.07.28

'채식주의자' - 경계 바깥의 삶

작가 '한 강'의 소설 '채식주의자'가 맨부커 국제상을 수상하였다고 한다. 더부러 번역가 '데보라 스미스'의 번역 작업도 수준 높다고들 하였다. 2016년은 그래서 '채식주의'를 읽고 넘겨야 할 것 같았다. 소설은 3부로 나뉘어 있고, 1부는 남편이 화자이고, 2부는 형부가 화자, 그리고 3부는 언니가 화자가 되어 줄거리를 엮어 가는 연작 형식의 소설이다. 남편이 보기에 아내 영혜는 특별한 매력이 있지도 않고, 그렇다고 특별한 단점도 없어 사랑한다기 보다 함께 살기 편안한 정도의 아내였다. 그런데 어느 날 이상한 꿈을 꾸었다는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아내는 스스로 채식주의자가 되었다. 남편에게까지 나물만 먹이고 꿈 때문에 거의 잠을 자지 않으며, 잠자리를 거부하며, 가죽 구두를 모두 버리는 등 홀로 변해..

노트북/2016년 2016.07.14

'더블린 사람들' 이 보내는 우울 바이러스

지구촌이 좁아지다 보니 우리는 국내외의 크고 작은 사건 사고를 보고 듣느라 잠시도 한가할 틈이 없다. 영국의 브렉시트 사건으로 세계인이 혼란에 빠졌다니 장차 우리는 어쩌나 걱정, 터키 공항에서 또 자폭 테러 사건이 발생해서 희생자를 냈다고 하니 남의 일같지 않게 불안한데, 나라 안 소식은 소식대로 TV만 켜면 알기도 혐오스런 사건들을 실시간으로 기를 쓰며 주입시키느라 전파를 쓰고 있다. 나는 가끔 생각한다. 정보가 제한된 북한 동포들이 우리들의 극성스런 보도를 접한다면 " 아! 저것이 바로 지옥이로구나" 하며 자기들의 삶에 대단한 안도와 행복을 느끼겠구나 하는 상상들을 해 본다. 미담은 간 곳 없고 흉악한 사건 사고들이 넘쳐나고, 그리고 모두들 남탓, 네탓으로 날이 새고 날이 진다. 영화도 마찬가지로, ..

노트북/2016년 2016.07.08

마지막 날을 고베에서.

은각사에서 동복사에서, 맑은 물이 나도록 깨끗하고 정돈된 일본의 얼굴을 보았다면, 후시미 이나리 신사에서는 용틀임하듯 꿈틀거리는 상승의 욕구를 엿보았다.언제 바뀔지 모르는 내 마음이 그렇게 줄 긋기를 해 보고 있었다. 오늘은 일찍 서둘러 고베로 향한다. 고베를 경유하여 한 나절 고베를 둘러 보고, 오후에 오사까로 나가야 한다니 마음이 당연히 바빠졌다. 분주한 자의 대표 식사 햄버거로 아침을 때우기로 하였는데, 이른 아침 맥도날드에는 바쁜 직장인들이 자리를 메우고 있어,여행자 티를 한껏 내면서 역에서 테이크 아웃 햄버거를 먹으니, 어색하고도 그 재미가 쏠쏠하다. '지진 참사의 도시' 로 우리 뇌리에 박혀 있는 도시, 고베로 간다. 하지만 그 이름이 고베(新戶)이다.새로운 문물이 처음 들어 온 곳, 견인차 ..

교토 여행 3.

교토의 세 번째 날 어제 귀에 담은 댓숲의 바람 소리, 눈에 담고 또 담은 아름다운 정원, 발에 남은 긴 툇마루의 감각.... 오래 기억하려는 노력은 카메라에 의존한다지만 그래도 공부하듯이 열심히 보면서 걸었다. 먹지 않아도 배 부를 것 같은데 맛있게 먹고 다니니, 피로가 멋쩍어 달아나는 지경이다. 발바닥 아픈 것도 남의 발 바라 보듯 발 파스 한 장 붙이고 또 나선다. 사람들이 사랑하는 명소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는 법. 엄격한 자기 관리, 저변에 흐르는 문화적 우월감, 그런 공기를 살짝 느껴 본다. 아름다움 하나로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는 것이 자연스러운데 그래도 대단하다는 생각을 해 본다. 벌이 꽃을 찾아 여행을 떠나는 것이나, 인간이 아름다운 곳을 찾아 발품을 아끼지 않는 것이나 추구하는 기본은 같을..

교토 여행 2.

자유 여행이라고 하여 여유를 부리며 하루를 시작하겠거니 하는 예상은 아침 일찍 일어 나는 남편 습관에 맞추느라 보기 좋게 빗나갔다. 피로도 가셨는데 잠이 뭐 대수는 아닌 것, 아들이 렌트해 온 차로 세 식구가 부리나케 나선다. 아! 좌측 통행 운전의 어려움이여.......가슴이 철렁 철렁 하였으니, 아들은 신경 쓰며 잘만 가고 있는데 호들갑은 금물이었던 것. 아들이 정리해 준 오늘의 일정이다.토요다 차를 렌트했으며, 아라시야마(치큐린 - 노노미야신사- 텐류지) - 닌나지(인화사) - 킨카쿠지 (금각사) - 니시진 회관(기모노) - 니시키마켓 (반찬 시장) 치큐린 (竹林) 치큐린이란 말을 입속에 굴려 보니, 그 어감이 죽림보다 더 댓숲과 바람과 잘 어울리는 게 아닌가 하는 쓰잘머리 없는 생각을 하며 걸어 ..

교토 여행 1

교토 여행 1. '의미 없는 여행이란 없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어렵고 힘이 드는 여행에도 늘 배움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나에게 이번 교토 여행은 의미가 남 달랐다. 아들이 휴가까지 내가며 남편과 나를 교토로 이끈, 진정 의미 있는 여행이었기 때문이다. 교토는 일본의 예전 수도이며 금각사와 청수사가 아주 유명한 관광지라는 기본 지식 정도에 불만 없이 살았었다. 그런데 교토는 바람처럼 지나칠 그런 도시가 아니라는 것이 우리 아들의 생각이다. 출장차 상당히 많은 시간을 이 곳에서 보내면서 가진 관념인 것이다. 희떠운 말이라고는 하지 않는 아들을 따라나서면서 여행의 즐거움에 더하여 생각 하나가 보태진다. 그간 얼마나 준비를 많이 했을까 하는 짠한 마음에 콧등이 찡한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새벽 댓바람에 ..

'라스토케''플리트비체'를 떠나 '자그레브''프라하'까지.

1. 라스토케 ( Rastoke ) in Croatia 라스토케는 크로아티아 슬루니 지방에 있는 작은 마을이며, '작은 플리트비체'로 불리기도 하는 아기자기한 마을이다. '라스토케'는 천사의 머릿결이라는 뜻을 가졌다고 하는데, 작은 폭포가 너울져 흐르는 마을을 바라 보면 작명의 깊은 뜻을 알게 된다. 빗줄기가 아주 가시지 않은 오후, 여행이 일주일이 넘어 이동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되면서 피로가 몰려 오는 오후. 버스에서 내려 추적 추적 걷다가 깜짝 놀라, "와우!" 소리치고 만다. 사진으로 이미 많이 보아 온 이 풍경에 소스라치게 놀란 것이다. 너무 어여쁘다. '슬루니'라는 작은 마을이 엽서 한 쪽처럼 산 속에, 물 위에 오롯이 자리하고 있다. 물 가에 물 위에 집을 지어 살다니.....